한국초등테니스연맹 Korea Elementary Tennis Federation         

지난 5월 5일 한국 테니스계는 ‘큰 뉴스’를 받아들었다. ‘한국 테니스의 간판’ 정현(세계랭킹 155위·한국체대)이 오랫동안 지켜오던 국내 1인자 자리를 다른 선수에게 내준 것이다.

 

정현으로부터 ‘국내 1인자’의 자리를 빼앗은 선수는 권순우(135위·당진시청)다. 권순우는 이날 남자프로테니스(ATP) 비트로 서울오픈 챌린저 대회 결승에서 맥스 퍼셀(236위·호주)을 2-0(7-5 7-5)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3월 일본에서 열린 게이오 챌린저에 이어 개인 통산 두 번째 챌린저 단식 타이틀을 따낸 권순우는 세계 랭킹을 135위까지 끌어올리며 부상으로 투어 대회 일정을 잠정 중단한 정현을 제치고 국내 랭킹 1위로 올라섰다.

부상 중인 정현 제치고 국내 랭킹 1위로

한동안 한국 테니스는 늘 정현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정현의 성적이 곧 한국 테니스의 성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이번 권순우의 우승은 적지않은 의미가 있다.

 

권순우의 고향은 경북 상주다. 1997년 12월 2일생으로, 1996년생인 정현과 한 살 차이다. 원래 테니스보다는 축구를 좋아했다. 그런데 아버지한테 속아(?) 테니스를 시작하게 됐다.

 

축구를 시켜준다고 해서 좋다고 따라갔는데 깜빡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가 깨보니 테니스장이었다. 고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테니스 광팬이었다. 조금이라도 테니스에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아들을 ‘속일’ 수밖에 없었다.

 

어린 권순우에게는 당시 상황이 충격적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권순우는 “일어나보니 축구장이 아니라 테니스장이어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아버지 때문에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테니스 라켓을 잡게 된 권순우. 하지만 그의 성장세는 누구보다 빨랐다. 2013년부터 참가한 각종 국내 주니어대회마다 우승컵을 휩쓸며 전국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알리게 됐다.

 

2015년에는 프로로 전향해 국제 퓨처스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랭킹을 조금씩 올리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권순우는 마포고 1년 후배인 이덕희(246위)와 함께 정현의 뒤를 이을 국내 2인자 구도를 갖추게 됐다.

 

메인 스폰서 없어 자비로 투어 참가

권순우는 전형적인 베이스 라이너다. 코트 뒤쪽 깊숙한 곳에서 이쪽저쪽을 쉴새없이 누비면서 상대의 공격을 모조리 받아낸다. 상대가 빈틈을 보이면 자신의 장기인 강력한 포핸드를 날려 포인트를 따낸다. 아직 첫 서브 성공률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이지만, 최고 시속을 200㎞까지 끌어올려 위압감을 배가시켰다.

 

이번 서울 오픈은 발전한 권순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권순우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코감기에 걸려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날카로운 포핸드와 상대 몸에서 멀리 바운드되는 킥서브(많은 회전을 준 서브)에 상대 선수들이 당황했다. 결승에서는 두 세트 모두 끌려가다가 뒤집는 정신력까지 보였다.

 

프로 초창기만 해도 권순우는 정신력이 약해 스스로 실책을 남발하며 자멸하는 경기가 많았다. 한 테니스 관계자는 “아직 보완해야 할 점들이 분명 보이기는 해도, 성장 속도가 빠른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테니스 선수치고는 작은 180㎝의 키가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178㎝인 니시코리 게이(7위·일본)의 경우처럼, 작은 키로도 얼마든지 세계 정상급 플레이를 하는 선수를 찾아볼 수 있다.

 

한때 세계 랭킹 8위까지 오르기도 했던 마르코스 바그다티스(133위·키프로스)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권순우에 대해 “앞으로 더 공격적으로 한다면 니시코리와 비슷한 스타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제 막 날개를 펼치려 하는 권순우에게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메인 스폰서의 부재다. 현재 정현은 제네시스, 이덕희는 현대자동차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다. 정윤성(270위) 역시 CJ제일제당으로부터 메인 스폰서 후원을 받는다.

 

권순우는 스포츠용품업체인 휠라와 헤드로부터 용품 후원을 받는 게 전부다. 투어 비용 대부분을 자비로 충당하고 있으며, 소속팀인 당진시청과 스포츠매니지먼트사인 스포티즌으로부터 약간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래도 1년에 ‘억 단위’로 들어가는 투어 비용을 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메인 스폰서의 유무는 테니스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과거 이형택이 안정적인 투어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삼성이라는 든든한 메인 스폰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현 또한 주니어 때부터 지난해 2월까지 삼성의 지원을 받았다. 권순우도 돈 걱정 없이 투어에만 집중하기 위해서는 메인 스폰서가 절실하다.

 

정현 복귀하면 한국 테니스 쌍두마차 기대

권순우가 국내 1인자로 올라섰다고는 하지만 아직 이름값이나 국제대회에서 올린 성적 등을 감안하면 정현에게 한참 미치지 못한다.

 

정현이 2018년 호주 오픈에서 달성한 4강 진출은 당시 모든 종합지와 스포츠전문지 1면을 장식하는 등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일각에서는 2002년 국제축구연맹(FIFA) 한·일 월드컵 4강에 견주기도 한다.

 

하지만 정현은 호주 오픈 이후 잦은 부상으로 인해 예전의 모습을 좀처럼 보이지 못하고 있다. 부상이 어쩔 수 없는 변수라고는 하더라도 분명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한편에서는 정현에서 권순우로 한국 테니스의 무게 중심이 이루어지는 중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너무 섣부른 판단이다. 정현도 아직 20대 초반이다. 부상 중이라고는 해도, 메이저대회 4강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현이 권순우의 1인자 등극을 좋은 동기 부여로 삼을 수 있다. 권순우는 올해 ATP 250시리즈 등 보다 높은 투어 대회 참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정현이 부상에서 성공적으로 회복해 돌아와 같이 투어 대회를 다닐 수 있다면 둘 모두에게 그만한 자극제도 없을 것이다. 권순우는 “정현을 만난다면 지고 싶지 않다”며 벌써부터 승부욕을 불태우고 있다.

 

정현이 언제 부상에서 복귀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때가 멀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때로는 자극제로, 때로는 타지에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동료가 될 수 있다면 한국 테니스는 몇 뼘 더 성장할 수 있다.

 

우리도 있다, 1998년생 동갑내기 이덕희와 정윤성

한국 테니스를 이끌 인재는 정현과 권순우만 있는 것이 아니다. 1998년생 동갑내기인 이덕희(247위·현대자동차 후원)와 정윤성(270위·의정부시청)도 정현과 권순우의 뒤를 차근차근 쫓아가고 있다.

이덕희 선수(왼쪽)와 정윤성 선수(오른쪽) / 연합뉴스·대한테니스협회

이덕희는 한국 팬들에게 잘 알려진 선수다. 다름 아닌 라파엘 나달(2위·스페인)과의 인연 때문이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덕희는 2013년 4월 만 14세 11개월의 나이로 일본 쓰쿠바대 국제 퓨처스 대회 남자단식 본선 1회전에서 승리를 거둬 남자프로테니스(ATP) 랭킹포인트를 따냈다. 당시 이덕희는 주니어 선수였다.

 

포인트를 따냄으로써 이덕희는 ATP 랭킹 1569위에 오르게 됐다. 이는 당시로는 전세계 프로 선수들 가운데 최연소로 해낸 기록이었다.

 

이런 이덕희의 사연이 스페인 최대 스포츠지인 〈마르카〉에 크게 실렸고, 이를 본 나달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장애를 극복한 이덕희의 도전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이덕희의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나달은 2013년 9월 내한 당시 이덕희를 만나 훈련을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하는 등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있다. 이덕희 또한 정현이 한국 테니스에 새긴 최연소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성장하고 있다.

 

정윤성은 정현이나 권순우, 이덕희에 비하면 다소 지명도는 낮은 편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주니어 최고 랭킹 3위에 오르는 등 확실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이덕희와 비교할 때 성장 속도가 조금 느린 편이긴 하지만, 꾸준히 기량이 늘고 있다. 2017년 프로로 전향했고, 프로 데뷔 1년 만에 처음으로 퓨처스 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등 눈에 띄는 성과를 내는 중이다.

 

정윤성은 이미 더 이상 퓨처스 대회에 참가하지 않겠다며 한 단계 높은 챌린저 대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는 친구인 이덕희도 마찬가지다. 이들 모두 정현과 권순우를 따라잡기 위해 오늘도 굵은 땀을 흘리고 있다.[출처: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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